레플리카에서 시작된 데님 브랜드들을 생각하다보면, 서울의 익선동이 생각납니다. 익선동에 가면 한옥과 옛날 건물들이 그대로 있지만, 그 안에 각각의 개성을 갖춘 카페들이 즐비해 있습니다. 온고지신이 느껴지는 정겨운 곳이죠.
데님 레플리카 브랜드들도 비슷한데, 그들은 청바지 오리지널한 디자인과 헤리티지는 지켜나가며, 그들만의 개성을 담은 데님을 만들어내기 때문입니다. 책 <레플리카> 2장에서는 일본의 아메리칸 캐주얼에 관해 이야기 합니다. 물론 데님과 관련된 이야기죠. 자 그럼 제 2장 시작하겠습니다.
2장 일본의 아메리칸 캐주얼
1945년 일본이 패전하고 미군이 일본에 주둔하면서 청바지가 시중에 조금씩 흘러들었습니다. 이와 동시에 미국 문화가 일본사회에 큰 영향을 미치면서 청바지가 서서히 알려지기 시작하지만, 초창기에 청바지는 값도 비싼 기능성 의류로 인식 되었습니다.
이렇게 1950년대 일본에 유입되어 젊음과 반항의 상징으로 떠오른 청바지는 기존 사회와 부딪히며 부침을 겪지만 시간이 지나며 청바지와 아이비 패션은 조금씩 일본에서 평범한 일상복으로 토착화 되었습니다. 1970년대 환경 친화적인 패션이 등장했고,1970년대 말에는 이러한 경향이 심화되어 ‘헤비듀티’가 유행하기도합니다.
이러한 두가지 거대한 두 가지 패션 조류, 거친 청바지와 아웃도어, 그리고 심플하고 단정한 프레피룩은 서로 조합점을 찾으며 내추럴과 러기드 사이에서 균형을 이루기 시작하며, 올드 아메리칸 패션 특유의 기본에 충실한 스타일은 일본에서 명맥을 이어나갑니다.
이러한 조류 속에서 1977년 일본에서는 청바지 원형으로 회귀하는 현상이 일어납니다. 육체 노동자의 요구를 녹인 투박한 디자인의 기능성 오리지널 청바지를 원하는 이들이 생겨난 것입니다. 오사카나 도쿄 구석에 들어선 빈티지 의류가게에서 리바이스나 리의 중고 청바지를 찾아 판매하며 팬을 거느렸고, 미국의 재고까지 가져와 판매하기 시작합니다.
그 후 1980년대에 들어 일본의 ‘빅존’ ‘스튜디오 다티산’ 프랑스의 ‘아페쎄’가 리바이스 501에서 영감을 얻은 바지들을 만들며, 여러 데님 브랜드들이 생겨나며, 청바지에 대한 관심이 급증하기 시작합니다.
이시기에 있었던 또 하나의 중요한 사건은 1983년 미국의 콘 밀스에서 구형직기로 셀빌지 데님 생산을 중단한 것입니다. 신형직기로 새로운 나온 매끈하고 균일한 데님은 깔끔했습니다. 하지만 이 사소한 변화를 누군가는 큰 차이로 받아들였고, 청바지를 두루두루 입어본 경험이 있으며, 청바지에 애정이 많은 이들은 이런 변화도 금세 알아차렸습니다. 구형 직기로 짠 데님의 울퉁불퉁함 ,구형 재봉틀에 긁힌 자국, 옛날 방식의 인디고 염색에 따른 균열 등이 모두 합쳐져 청바지 특유의 거친 매력이 만들어졌던 것인데, 그런 요소가 모두 사라졌으니 아메리칸 빈티지 패션을 즐기던 이들로서는 불만을 가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에 몇몇 사람들은 시중에 남은 구형 청바지를 찾아 미국으로 떠나며 일본의 ‘데님 헌터’가 생겼고 그들은 미국에서 일본으로 청바지를 판매 했습니다. 그렇지만 공급은 한정되었고, 결국은 새로운 청바지를 만들어보기로 결정합니다.
하지만 새로운 청바지를 만드는 데는 몇 가지 조건이 필요했는데, 옛 기술과 옛 기계가 필요했고, 지퍼나 리벳 같은 예전에 사용하던 다양한 부자재도 구해야 했습니다. 하지만 일본인들은 모든 것을 구해냈고, 없으면 새로 제작하는 불굴의 정신을 보여주며 , 그 당시의 조건을 맞춤으로 레플리카 청바지를 만들기 시작합니다.
그렇게 만들어진 청바지 회사들이 하나씩 해외에 진출하고, 또 외국에서 빈티지 청바지 제작을 시도하면서 수요는 계속 늘어나며 일본의 청바지 브랜드들이 많이 생겨나며 오히려 수출을 하며 지금까지 명맥을 이어나갑니다.
마무리로 일본의 레플리카 데님 브랜드들의 바지 사진으로 마무리 하겠습니다~
오늘도 방문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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